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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모습

활 제조자 (Bowyer)

1.활 제조자 (Bowyer)-중세 시대 필수 직업

중세 봉건사회에서 활은 군사적, 사냥, 스포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필수 무기였다.

중세 유럽 봉건사회 활 제조자 (Bowyer)자 활을 만들고 있는 모습

활을 제작하는 장인을 활 제조자(Bowyer)라고 하며, 이들은 목재를 다듬고 구부려 튼튼한 활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활 제조자들은 단순히 무기를 제작하는 기술자에 그치지 않고, 지역 방위력과 사냥 문화 전반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특히 활은 보병 전투에서 결정적인 무기였고, 사냥에서는 귀족과 평민 모두에게 식량 확보 수단이었다. 중세사회에서 활은 병사들과 사냥꾼에게 필수적인 무기였기에, 활 제조자들은 지역 공동체 내에서 존경받는 장인이었다. 영국에서는 장궁(Longbow),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단궁(Shortbow)이나 복합궁(Composite bow)이 널리 사용되었고, 이들 각각에 특화된 활 제조 기술이 존재했다.

활 제조자들은 보통 길드(Guild)에 소속되어 활 제작 규격을 엄격히 관리했으며, 각 지역마다 독자적인 제작법과 스타일이 존재했다. 영국의 경우 13세기부터 활 제작과 관련된 규정을 법으로 정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군사용 장궁은 일정 길이 이상이어야 하며, 사용되는 목재 종류도 정해져 있었다. 이는 활의 품질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2.활 제작 과정과 재료

활을 제작하는 과정은 매우 정교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활 제조자들은 주로 느릅나무, 주목(Yew), 단풍나무, 참나무 등 탄성과 강도가 우수한 목재를 선택했다. 특히 주목(Yew)은 유럽에서 가장 선호된 목재였는데, 중심부는 단단하고 겉껍질은 탄성이 뛰어나 완벽한 활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쳤다.

먼저, 적합한 나무를 선별한 후, 이를 장기간 자연 건조하거나 저온에서 서서히 수분을 제거하여 나무의 내구성과 유연성을 높였다. 이후, 나무를 적절한 크기와 두께로 절단하고, 중심축을 기준으로 활의 앞면과 뒷면을 조정했다. 열을 가해 나무를 부드럽게 만든 후, 서서히 구부려 원하는 곡선을 만들고, 고르게 힘이 분산되도록 세심하게 조각했다.

활 시위는 별도로 준비되었는데, 주로 아마섬유, 리넨, 견사, 동물의 힘줄(Sinew) 등을 꼬아서 만들었다. 시위는 활의 성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인장 강도가 높고 수분에 강해야 했다. 또한, 시위와 활 몸체의 접합 부분은 가죽, 접착제, 금속 리벳 등을 이용해 보강하여 내구성을 높였다.

특히 장궁 제작은 매우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장궁은 길이가 1.8미터 이상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고, 전체 무게 배분과 탄성 조정이 절묘해야 했다. 이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제작자는 실전에서 활이 부러지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하나의 완성된 활을 만들기까지는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기도 했으며, 최고의 활은 수십 년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정밀했다.

 

3.활 제조자 (Bowyer) 의 쇠퇴

활 제조자(Bowyer)의 전성기는 중세 시대였다. 12세기부터 14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에서는 궁수의 중요성이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1346년 크레시 전투(Battle of Crécy)1415년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에서 영국 장궁병들이 보여준 활약은 활 제조자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 전투들은 활이라는 무기가 기병 위주의 전통 전쟁 방식을 뒤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5세기 중반 이후 화약 무기의 발달로 활 제조자들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총기의 정확성과 발사 속도가 활에 비해 떨어졌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이 격차는 빠르게 좁혀졌다. 특히 머스킷(Musket)과 대포(Cannon)의 등장은 궁수 부대를 점차 밀어냈고, 이에 따라 활 수요 역시 급감했다.

게다가 군사 전술 자체가 대규모 궁수 부대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총기 보병 중심으로 변화했다. 활 제조자들은 이에 적응하기 위해 사냥용 활, 스포츠용 활, 장식용 활 제작으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전체적인 시장 축소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16세기 말이 되면, 활 제조자라는 전문 직업은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사실상 소멸했다.

일부 지역, 특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활과 화살 제작 전통이 긴 시간 동안 명맥을 유지했으나, 이는 상업적 중심이 아닌 민속 문화적 의미에 가까웠다.

 

4.현대에서의 활 제조 전통

비록 활 제조자(Bowyer)라는 직업은 중세 시대의 전성기처럼 번성하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도 일부 장인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활을 제작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수작업으로 활을 제작하며, 옛 기술을 현대 재료와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전통 활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중세 활 복원 프로젝트, 역사 재현 행사(Historical reenactment), 영화 및 드라마 제작, 그리고 전통 궁술 대회(Traditional Archery Competition) 등에서 전통 활의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박물관이나 공예 전시회에서도 활 제작 시연이 이뤄지며, 활 제조의 섬세한 기술과 장인 정신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현대 스포츠 궁술(Archery)에서도 전통 장궁을 사용하는 부문(Longbow category)이 존재하여, 활 제조자들의 기술이 여전히 필요하다. 최근에는 자연 친화적이고 전통적인 취미를 찾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수제 활(custom handmade bows)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대 활 제조자들은 전통 기술을 계승하는 동시에, 탄소 섬유, 고강도 합성 소재 등 현대 과학 기술을 접목해 더욱 다양한 활을 개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활 제작은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지만, 중세 활 제조자들이 남긴 정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손으로 최상의 무기를 빚어내는 노력 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