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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모습

중세 유럽 채식주의자

1. 채식주의의 철학적 및 종교적 기원

중세 시대에는 고기를 먹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은 육식을 거부했다. 채식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했으며, 

중세와 현대 채식주의자 식단

특히 철학적·종교적 동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네딕토회와 시토회와 같은 여러 수도원의 규율에는 종종 육식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도사와 은둔자들은 육식이 단순히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을 무겁게 할 수도 있다고 믿었고, 이에 따라 단순한 음식을 선호했다. 마찬가지로 유럽 이단 종파인 카타리파 및 알비파를 따르는 사람들은 물질 세계가 부패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종종 고기를 먹지 않는 생활 방식을 따랐다.

일부 수도원에서는 육식 금지가 단순한 신앙적 실천을 넘어 수도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시토회 수도원에서는 공동 식사에서 육식을 배제함으로써 수도사들 간의 평등을 유지하려 했으며, 이는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도 기여했다. 또한,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들과 함께 검소한 삶을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육류를 소비하지 않는 것이 신앙적으로 더욱 순수한 길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채식은 금욕주의와 영적 수련의 핵심 수단으로 여겨졌으며, 일부 수도사들은 이를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신에 가까워지기를 염원했다.

 

2. 중세 시대 채식주의와 건강 개념

종교적인 이유 외에도 일부 사람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선택했다. 고대 의학자인 갈레노스와 아비센나의 이론은 식단 균형을 유지하고 과도하게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것이 체액 균형을 방해하지 않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의사들은 수도사와 귀족들에게 과일, 콩류, 곡물을 더 많이 섭취하고 육류 소비를 조절하도록 권장했다. 12세기 유대인 철학자이자 의사인 마이모니데스(모세 마이모니데스, Moses Maimonides)와 같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식단의 절제와 균형을 강조하는 유사한 견해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반드시 육식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건강을 위해 절제된 식사를 강조했다.

또한, 중세 시대의 의사들은 육류 소비가 특정한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지나친 육식이 체내의 '뜨거운' 성질을 증가시켜 고열과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반면, 곡물과 채소는 '차가운' 성질을 지녀 몸을 안정시키고 장수를 돕는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귀족들조차도 특정 시기에는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실천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사순절과 같은 종교적 기간에는 귀족층도 일시적으로 육류를 금하며 영적 정화를 시도했다. 이는 단순한 건강 관리뿐 아니라 종교적 연대와 자기 절제의 실천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3. 수도원 규율과 육식 금지

중세 수도원들 중에서 카르투지오회와 프란체스코회는 엄격한 육식 금지 규율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카르투지오회 수도사들은 철저하게 육식을 금지했으며, 특정한 경우에만 생선을 먹었다. 그들의 채식 생활 방식은 단순함, 명상, 그리고 속죄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 또한 단순한 생활 방식을 장려했지만, 모든 구성원이 엄격한 채식을 실천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 신학자 윌리엄 오컴과 같은 일부 학자들은 때때로 식단의 절제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일부 수도사들은 단순히 육식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수도사들 사이에서는 동물을 도살하는 행위 자체가 비폭력적인 삶의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윤리적 채식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수도원에서는 식량 생산을 자급자족하는 구조를 유지하면서, 곡물, 채소, 과일을 주된 영양 공급원으로 삼았다. 수도원 정원은 단순한 식량 공급처를 넘어 수행과 명상의 장소로도 기능하였으며, 식물과 조화로운 삶이 영적 수련에 긍정적이라는 인식이 존재했다.

 

4. 중세 시대의 채식주의: 드물지만 존재한 관습

비록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육식을 했지만, 채식주의는 중세 시대에도 적지만 주목할 만한 실천으로 존재했다. 수도사들, 이단 종파들, 그리고 의학 철학자들 사이에서 육식을 피하는 개념은 꾸준히 확산되었다. 오늘날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았지만, 이는 중세 시대 사람들도 식단과 동물 윤리에 대해 고민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채식주의는 현대에 새롭게 발명된 개념이 아니라, 오랜 전통 중 덜 알려진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채식주의자들이 신념, 건강 또는 철학적 이유로 육식을 피하는 것처럼, 중세 시대 사람들도 자신의 믿음, 건강 고려 또는 철학적 성찰에 따라 신중하게 식단을 선택했다. 또한, 일부 수도사들은 금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육식을 멀리했으며, 건강을 유지하거나 신성한 수행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채식주의를 실천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은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식습관을 둘러싸고 다양한 가치를 고민해 왔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중세의 일부 문헌에서는 채식을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명료함과도 연결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수도사들은 육식을 피할 때 집중력이 향상되고 영적 수련이 더 깊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명상 수행자들이 특정 식단을 따르는 이유와도 유사하다. 따라서 중세 시대의 채식주의는 단순한 음식 선택을 넘어 신앙적, 철학적, 건강상 요소가 결합된 보다 복합적인 개념이었다. 또한, 이러한 채식 실천은 종종 공동체 내에서의 연대감 형성과 생활 방식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했다. 중세 채식주의는 시대를 앞선 실천이자, 오늘날의 지속 가능한 삶과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흐름과 연결되는 중요한 역사적 단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