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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모습

중세의 십일조(Tithe)는 어떤 세금이었나?

1. 중세의 십일조(Tithe): 종교와 의무의 결합

중세 시대의 십일조’(라틴어: decima)는 교회가 부과한 일종의 세금이었다. 이 용어는 열 번째를 의미하는 라틴어 decimus에서 

세금내는 중세 봉건사회 모습과 현대사회 모습

유래한다. 이 제도의 신학적 기반은, 신도들이 수확물의 10분의 1을 하느님께 되돌려 바쳐야 한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 관습은 성경 구약에서 비롯되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했다는 율법에 그 기원이 있다. 중세 기독교 유럽에서 교회는 이 종교적 원칙을 제도화하여, 강제적인 재정 장치로 발전시켰다.

십일조(Tithe)는 밀과 포도주만이 아니라, 가축, , 양모, 채소 등 거의 모든 농산물을 포함했다. 대부분의 농민과 소작농은 현물로 십일조를 납부했으며, 이들은 지역 교구에 위치한 십일조 곡창”(tithe barn)에 보관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인과 상인들도 수입의 일부를 헌납해야 했다. 십일조는 단순한 신앙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졌으며, 중세 사회의 경제 및 사회 구조에서 중요한 기둥으로 작용했고, 교회가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특히 십일조는 교구 중심의 농업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구 단위로 수확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기여도를 관리하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곧 농민의 의무이자 교회의 권리였으며, 이를 거부하거나 연기하는 행위는 종교적 불경으로 간주하였다.

 

2. 교회의 재정 및 정치 권력

중세의 교회는 단순히 영적인 권위만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준정부적이고 경제적인 권력까지도 행사했다. 십일조는 성직자의 생활을 유지하고, 교회를 건설 및 보수하며, 빈민을 돌보는 데 사용된 주요 재정 자원이었다. 지역의 신부, 주교, 수도원 수도사들은 이 세금으로부터 일정 몫을 받았으며, 십일조는 또한 교육기관, 필사본 제작소(scriptoriums), 성지순례와 문화 활동의 재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십일조는 남용되기 쉬운 제도이기도 했다. 일부 부유한 지주나 귀족은 교회의 이름을 빌려 농민들에게 십일조를 부과한 뒤, 이를 사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농민과 영주 간의 갈등이 발생했고, 더 나아가 교회와 왕권 간의 긴장도 초래되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후 많은 십일조 수입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국가 왕실로 이전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 간의 장기적인 갈등의 출발점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십일조가 성직자의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는 비판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폭발했고, 이는 프랑스 혁명의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당시 시민들은 교회의 부유함과 민중의 궁핍함 사이의 불균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십일조 폐지는 혁명 이후 먼저 시행된 조치 중 하나였다.

 

3. 민중의 부담과 복지 제도로서의 십일조

십일조는 자발적인 헌금이 아닌 법적 의무였다. 이를 납부하지 않으면 교회적 제재예컨대 파문(제명)뿐 아니라 사회적 배척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농민과 같은 하층 계층에게 십일조는 매우 무거운 부담이었다. 흉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한 해에도, 그들은 수익이 거의 없어도 십일조를 내야 했다. 이러한 불공정은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14세기와 15세기에 걸쳐 농민 반란과 사회적 저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십일조는 사회적 복지 기능도 수행했다. 교회는 이 재원을 활용해 병원, 고아원, 학교를 운영했고, 일부 수도원에서는 이를 통해 자선과 사회보호 체계를 유지했다. 따라서 십일조는 한편으로는 억압적인 제도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비와 나눔의 수단이었다. 이 양면성은 중세 제도의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 권력과 돌봄, 착취와 지원은 때때로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모순되게 공존했다.

또한 교회의 십일조 수입은 때때로 문화 예술 후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중세 후반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예컨대 샤르트르 대성당이나 쾰른 대성당은 이러한 세금 체계 없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십일조는 중세 문화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4. 현대 세금 제도와의 비교

오늘날 십일조는 대부분의 세속 정부에서는 사라졌지만, 일부 개신교 교회에서는 여전히 자발적인 신앙 행위로서 십일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세금은 종교 기관이 아닌 국가가 부과하며, 그 목적과 방식은 공정성, 투명성, 책임성을 기반으로 한다. 시민의 의무로서 납세는 이제 신앙이 아니라 사회계약의 원칙에 근거한다.

중세의 십일조는 일반적이고, 후진적이며, 종교 중심적이었던 반면, 현대의 세금 제도는 점진적이고, 공정하며, 세속적이다. 하지만 십일조는 여전히 우리가 전근대적 재정 구조와 종교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는 창이다. 오늘날에도 세금의 형평성, 부의 재분배, 시민의 책임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다. 그런 점에서 십일조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사회적 렌즈이기도 하다.

게다가 최근 몇몇 사회학자들은 종교 기부와 국가 세금의 윤리적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지 않지만, 복지와 교육, 의료에 대한 세금 지출을 공동체적 헌신의 형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중세와 현대 사이의 연결 고리를 더욱 깊이 있게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