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시 생활의 일부가 된 욕조 청소부(Bathhouse Attendant)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는 공중목욕탕이 시민들의 위생을 책임지는 핵심 시설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기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목욕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목욕탕에서 일하는 욕조 청소부(Bathhouse Attendant)는 단순한 청소노동자가 아니라 도시 위생의 일선을 지키는 실질적인 관리인이었다. 이들은 목욕탕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을 데우고, 수건을 준비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담당했다. 특히 상인과 장인 계층이 목욕탕을 자주 이용했기 때문에, 욕조 청소부는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손님의 기호에 따라 물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목욕 전에 필요한 준비를 돕기도 했다. 특히 큰 도시의 목욕탕은 단순히 씻는 곳이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욕조 청소부는 고객 관리와 공간 운영의 핵심 인물로 여겨졌다. 그들은 목욕 문화가 갖는 사회적 기능 속에서 물리적 환경을 유지하는 숨은 공로자였다.
2. 욕조 청소부(Bathhouse Attendant)의 하는 일
욕조 청소부들은 하루 종일 일하며 물의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고 목욕탕의 각종 설비를 점검했다. 업무는 매우 육체적으로 고된 편이었으며, 새벽부터 불을 지펴 물을 데우고, 사용한 물을 다시 퍼내는 일까지 도맡았다. 특히 당시의 난방 방식은 나무나 석탄을 사용한 난로였기 때문에, 연기를 마시거나 화상을 입는 등 건강에 해로운 작업 환경도 빈번했다.
그 외에도, 욕조 청소부는 방문객들에게 수건을 제공하거나 향유와 비누를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일부 목욕탕에서는 부유한 고객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제공되었는데, 이 경우 욕조 청소부는 향유를 발라주는 역할까지 맡았다. 이처럼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예의와 숙련이 요구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의 기술과 신뢰성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루어졌다.
물론 모든 욕조 청소부가 존경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 직업이 하층민이나 노예 계층에 속했으며, 특히 농촌 지역이나 변두리 마을에서는 매우 천한 노동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 파리, 프라하 같은 대도시에서는 숙련된 욕조 청소부들이 보다 안정적인 수입과 사회적 인정을 얻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 일부는 장기간 근속 후 목욕탕 관리자로 승진하기도 했으며, 이는 직업적 성공의 한 형태로 여겨졌다.
3. 욕조 청소부(Bathhouse Attendant)의 쇠퇴
16세기와 17세기에 유럽의 도시화가 진행되고 공중위생 개념이 발전하면서 공중목욕탕의 이용은 점차 줄어들었다. 중세 후기에 접어들면서 유럽 각국은 수도관과 물 공급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상수도 시스템이 대규모로 확장되자 개인 가정 내에서 물을 데우고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더불어 르네상스 이후 기독교 윤리와 청교도적 가치관의 강화로 인해 공중목욕탕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점 더 밀려났다. 교회는 공공목욕이 성적 문란과 연결된다고 비판했으며, 도덕 개혁가들은 혼탕 문화나 목욕 중 발생할 수 있는 비행을 지적하며 금욕주의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목욕탕의 수요가 급감했고, 자연히 욕조 청소부라는 직업도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특히 흑사병 이후 질병에 대한 공포가 높아지면서, 다수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에 대한 혐오감이 커졌다. 물과 습기, 불특정 다수의 접촉이라는 특성상 공중목욕탕은 오히려 비위생적인 공간으로 간주되었고, 이는 욕조 청소부의 위상 하락과 직결되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도시에서 이 직업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또한, 욕조 청소부의 쇠퇴에는 경제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시설을 이용해야 했지만, 산업화 이후 노동계층의 임금이 상승하고 개인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가정에 세면 및 목욕 설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공중목욕탕의 존립 기반을 약화시켰고, 목욕탕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직업 안정성을 위협하게 되었다. 특히 고용 안정성이 낮은 하층민일수록 이런 구조 변화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고, 이는 사회 전반의 직업 재편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4. 욕조 청소부(Bathhouse Attendant)의 역사 흔적
오늘날 중세 시대의 공중목욕탕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 독일의 바덴바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터키의 이스탄불 등에서는 과거의 전통 목욕탕이 복원되어 관광 명소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하맘(Hamam) 문화는 중세 유럽과 교류하며 욕조 청소부와 유사한 역할을 했던 직업군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문화사적으로도 흥미로운 비교 지점을 제공한다.
한편 중세 문학과 법률 문서, 회화 작품 속에는 목욕탕과 욕조 청소부의 존재가 명확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14세기 영국의 시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목욕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풍속을 언급하며, 당시 목욕문화의 세부사항을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수도원의 기록에는 수도사들이 운영하던 목욕시설과 이를 관리하던 하인들의 역할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현대의 스파, 온천 리조트, 고급 호텔의 욕실 관리 직원은 중세 욕조 청소부의 후신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지위와 업무는 다르지만, '청결과 편안함을 책임지는 직업'이라는 본질적인 역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처럼 욕조 청소부라는 중세의 직업은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현대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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