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성채 수비병(Castle Guards)의 임무: 내부 방어
성채 수비병(Castle Guards), 내부 방어 담당자들은 성 내부를 보호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영주나 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성채 수비병은 외부의 적을 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도 맡았다. 주요 임무에는 성문의 경비를 서고, 성 내부의 숨겨진 위협을 감지하며, 영주나 왕의 사절이 머무르는 성채를 감시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특히 전시에는 성 내부의 관문과 복도에서 전투를 수행하며 적군이 성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또한 성 내부의 무기고와 식량 창고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전시에는 군수품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성 내부 방어를 담당하는 수비병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분배하고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이뿐만 아니라, 성 내부의 마구간과 훈련장 관리도 그들의 책임 중 하나였다. 수비병들은 전시뿐만 아니라 평화 시기에도 성 내에 출입하는 상인, 사절, 방문객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행정 업무도 맡았으며, 간혹 사형 집행이나 죄수 감시 등 사법적인 역할도 일부 수행했다. 또 다른 중요한 임무로는 성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작은 폭력 사태나 다툼을 중재하고, 범죄 예방을 위한 야간 순찰도 포함되었다. 이처럼 성채 수비병들은 단순히 무기를 들고 싸우는 역할을 넘어서, 성 내부의 방어 체계를 유지하고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중요한 존재였다.
2.성채 수비병(Castle Guards)의 자질과 군사 훈련
모든 병사가 성채 수비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철저하고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주로 전장에서 용맹함과 지혜를 입증한 베테랑 전사들 중에서 선발되었다. 성채 수비병이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무기 사용 능력과 전투 기술을 갖춰야 했을 뿐만 아니라, 성의 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영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군사 훈련은 엄격하게 이루어졌으며, 매일 체력 단련과 검술, 궁술, 백병전 훈련이 진행되었다. 일부 수비병들은 무기 교관으로 활동하며 젊은 병사들에게 방어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들의 역할은 강한 인내력과 지속적인 경계를 요구했으며, 평화로운 시기에도 언제든 전투에 대비해야 했다.
성채 수비병들은 전투 훈련뿐만 아니라, 성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별도의 교육도 받았다. 예를 들어, 화재 발생 시 긴급 대응법을 익히고, 독살이나 음모와 같은 내부 반란의 징후를 감지하는 법도 배웠다. 특히, 영주가 외부 손님을 맞이할 때는 경비를 더욱 강화해야 했으며, 왕실 사절이 방문할 경우 경비 체계를 더욱 철저히 유지해야 했다. 또한 종교 행사가 있을 경우 성 내 질서 유지와 성직자 경호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성채 수비병들은 단순한 전투 병력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와 통찰력을 갖춘 병사들이었다.
3.성채 수비병(Castle Guards)의 생활 환경과 보수
성채 수비병의 생활은 고되고 혹독했다. 이들은 성벽 안에서 거주하며, 주로 감시탑이나 병영에서 생활했다. 수비병들의 급여는 일정하지 않았으며, 일부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지만, 많은 경우 식량과 의복으로 보상이 이루어졌다. 왕이나 영주 가까이에서 근무하는 수비병들은 특별한 보상을 받거나 토지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특히 혹독한 겨울철에는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인해 생활이 더욱 어려웠다. 이러한 위험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채 수비병은 중세 사회에서 높은 명예를 누렸으며, 오랜 근무 후에는 성주(城主)나 군 지휘관과 같은 상위 계급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보통 2인 1조로 교대 근무를 하며, 한 조는 성문의 경비를 서고 다른 조는 성 내부를 순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교대 근무는 일반적으로 4시간마다 이루어졌으며, 야간에는 특별히 경계를 더욱 강화해야 했다. 성 내부에서 생활했으며,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는 장기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또한 수비병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휴가를 받아 고향을 다녀올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도 했으며, 장기간 근무한 수비병에게는 은퇴 후 생활비 또는 땅을 하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4.성채 수비병(Castle Guards)의 쇠퇴와 역사적 유산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무기와 군사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성채 수비병의 필요성은 점차 감소했다. 16세기에 접어들며 화약 무기의 등장과 군사 건축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통적인 성곽 방어 체계가 점차 효율성을 잃었고, 성채 수비병들의 역할도 축소되었다. 일부 수비병들은 왕실 근위대나 도시 경비대로 전환되었으며, 다른 이들은 민간 직업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채 수비병들의 흔적은 역사 기록과 유적 속에 남아 있으며, 이들이 수행했던 헌신적인 역할은 중세 유럽 군사 및 사회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유럽의 고성들에서는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 방어구, 그리고 생활 공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시대 성채 수비병들의 역할과 헌신은 단순한 군사적 의미를 넘어, 당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현대에 이들은 연구와 문화유산 보존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으며, 각종 재현 행사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의 소재로 활용되어 일반 대중에게도 그 의미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병사가 아니라, 중세 성채 문화의 상징적 존재로서 기억되고 있다.